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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동창한마당 > 아름다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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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아름다운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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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대중 (28 기)(daejungl@kornet.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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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시간 |
2003-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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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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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사실, 오늘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근데, 오늘은 영 학교 가기가 싫었다. 오늘 또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그 놈에 권태가 스믈스믈 내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한
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순환기 계통의 정밀 검사를 받으러 대학병원에 입원하셔야 되는데,
보호자가 있어야되니 내보고 같이 가잔다. 근데, 언제부턴가 나는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가
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 모레 칠십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주위에 친구들이 하나 둘씩 세상과 이별을 고할 때
마다 뭔가 찐덥지가 안으신 모양이다. 얼마 전에는 평소 노익장을 과시하시던 아버지 친구분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시자 그 길로 심장정밀 검사 예약을 하신 모양이다.
아버지 전화에 나는 잘 됐다 싶어 바로 가겠습니다하고는 차를 몰았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편히 검사 받으시라는 말을 남기곤 휑하니 병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곤, 포항 물회집으로 향
했다. 몇 년간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낸 덕에 밥해 먹기 싫고, 뭔가 성찬 아닌 성찬을 받고
싶을 때 자주 가던 내 단골 식당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밑반찬을 맛볼 수 있
고, 그기에다 얼큰한 매운탕까지 나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시원소주 한병 곁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식당에서 나는 내 자리가 있다. 그리 넓지 않는 직사각형의 식당은 입구 양옆으로 주
방과 방들이 마주보고 입구 맞은편은 벽인데, 나는 그러니까 오른쪽 모서리 벽을 볼 수 있
는 자리에 내 아지트를 틀었던 것이다. 그 자리는 으레 식사시간이 아니면 주방 아줌마들
이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박장대소하며, 테이블을 치곤 하던 그야 말로 식당의
소굴인데, 늦은 오후 어슬렁 그리며 내가 들어서면, 아줌마들은 일제히 자리주인 왔다며, 벌
떡 일어나곤 한다. 그야말로 그 자리의 주인은 나 였던 것이다. 그리곤 주문을 하지 않아도
어레이 벽을 바라보고 앉은 내 서늘한 등줄기를 타고 물회와 매운탕 그리고 소주 한 병이
배달된다. 그야말로 나는 면벽음주를 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면벽음주를 하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아직도 자기자신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내가 어느 샌가 내 자식과 내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있는 현실을 생각하니 피식 웃
음이 나왔다. 이 또한 삶의 역설 아닌가? 요즘은 혼자 마시는 술은 소주 한 병이 딱 좋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리곤 일어나 으레 그렇듯이 비디오가게로 향한다.
'오아시스'가 눈에 뛴다. 어, 근데 저 작품은 내가 즈음 한껏 마음을 주고 싶은 이와 같이
보기로 한 작품인데, 보자니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안 보자니 그와 같이 볼 날을 기약 할
수도 없으니, 영 내 맘이 찐덥지 않던 차에 평소 내 취향을 잘 아는 비디오 가게 아가씨가
예쁘장한 얼굴에 눈웃음을 치며, "아저씨! 오아시스 나왔는데, 이창동 감독 것, 아저씨 이창
동 감독 좋아하잖아요." 라며 비디오를 불쑥 내민다. 이 아가씨가 내 맘을 알리 없으니, 순간 고민하다 덥석 비디오를 받아들고 문을 나섰다.
집으로 들어와 깜빡 잠이 들었다. 전화 소리에 잠이 깨 시계를 보니 9시다. 오늘 아내는 아
이들과 친정에서 자고 오겠단다. 그러라하고, 부시시 일어나 뉴스를 잠시 보다 말고 '오아시
스' 생각에 비디오를 튼다.
12시경에 비디오는 끝났다.
씻고 책상에 널려있는 책들을 정리한 다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은 정확히 새벽 1시
정각이다. 그 한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한시도 오아시스를 떨구어 낼 수가 없었다. 이 글을 다 쓰려면 아마도 새벽 4-5시쯤에야 끝날 것 같다. 무엇인가 써놓고 마무리를 짓지 않고서는 꿈속에서조차 오아시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내일 일들이 걱정이 된다.
둘.
건달과 장애인의 사랑이야기. 만약 이창동 감독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야기류의 영화는 필경 순애보 아니면 아가페를 들먹이는 최루 영화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영화를 보기전 이미 그가 어떤 감독이었는지를 익히 알고 있던 터였으니, 그렇다면 영화가 나를 배반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또 한편 실망은 기대치에 비례한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역시 없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눈에서는 아직도 잔상이 어른거리고 귀에서는 이명처럼 공명음이 들리기 때문이었다. 이창독 감독은 역시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셋.
사랑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그 사랑의 상대가 만약 증중 장애인이었다면 사랑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런 경우라면 어쩐지 첫눈에, 또는 단번에 라는 것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 것이 그동안의 우리의 통념이었다. 열에 아홉은 필시 동정심과 연민
이 서서히 발전하여 사랑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이것을 정말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의 감정이란 그 변수로 치자면 무한대이므로 뭐라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의 건달장군은 공주마마를 그런 연민으로부터 사랑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장군에게 마마는 그런 대로 괜찮은 얼굴로 비추었고 풍만한 젖가슴을 가진 여자로 보였다. 달리 말하면 장군은 마마를 장애인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관능적인 여자로 본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첫 만남부터 참을 수 없는 욕정으로 강간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가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멀쩡한 건달 놈이 장애자를 강간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로부터 사랑이 시작되었다면 그 경우는 우리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 번의 욕정은 가능할 수 있다 할 것이나 그것이 사랑으로까지 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사랑을 이렇게 시도하고 있다. 장군이 마마를 처음 보게되는 순간 마마의 유일한 취미인 거울 비추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천장에 반사된 빛이 비둘기가 되어 날아갈 때 관객들 거개는 건달이 무슨 수호천사의 상징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대는 장군의 강간미수로 즉시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면 비둘기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의미는 서서히 나타나게 된다. 비둘기는 보호라는 명목의 애매한 수호천사로서가 아니라 한 사나이의 느낌 그대로, 감정의 흐름 그대로 현시 되어 가는 사랑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만약 장군이 애초부터 동정심이나 연민만으로 마마를 대했다면 마마는 장군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다만 자신을 장애자로 여기는 접근불가의 남정네로 치부해 버렸을 것이다. 자신을 강간해려 했던, 자신을 욕정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장군이야말로 진정 자신을 장애자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 생각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파렴치한이랄 수도 있는 장군에게 전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장군은 마마에게 푸른 하늘도 보게 하고 전철도 태워주고 비록 퇴짜는 맞지만 음식점에도 데려가고 빨래까지 해준다. 그런가 하면 장군의 어머니 생일잔치에까지 마마를 데리고 간다. 이것은 어쩌면 정상인이 장애자를 위해서 하는 지극히 정해진 수순에 불과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행동에서 보여주는 장군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음식점에서 퇴짜당하고 어머니, 형, 동생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으면서도 결코 항변하는 일이 없다. 왜 장애자를 사랑하면 안되요랄지, 왜 사회는 장애자를 이렇게 냉대하는 것이요랄지 지극히 함직한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형이 운전하여 사람을 죽인 뺑소니사건도 자신이 일부러 뒤집어쓰고 감방을 다녀오고서도 형에게 한마디 원망 섞인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스스로 행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 스스로 감내할 뿐 그 어떤 변명도 그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마를 사랑하는 것은 오직 자신이 좋아서 사랑하는 것일 뿐 주변의 모든 냉대와 조소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본디 장군의 캐릭터일 뿐이다.
우리사회에 횡행하는 거짓과 변명과 오만에 찬 자기 주장은 장군의 어느 구석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변명을 하지 않는 극단적인 예를 보자. 마지막 전철을 놓치고 어렵게 마마를 집에 데려다 준 장군, 그가 나가려 할 때 마마는 장군을 가지 못하게 한다. 자신과 동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때의 이 동침은 그 어떤 남녀의 동침보다도 순수하고 성의 있고 아름다우며 최고의 열락을 가져다 주는 동침이다. 그런데 마마의 오빠가 늦은 시간 마마의 집에 찾아와 그 광경을 목격하고 경찰에 연락하면서 이 신성한 동침이 졸지에 더럽고 추잡한 동침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장군은 장애자를 강간한 변태성욕자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기화로 마마의 오빠는 합의금을, 장군의 형은 달갑지 않은 동생과의 단절을 위한 호기로 삼지만 장군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 밤이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마마의 방에 걸린 오아시스 그림 속에 어른거리는 나뭇가지. 마마는 그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흔들릴 때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장군은 수리수리 마수리를 부려 그 무서움을 달래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장군이 감방에 가면 마마의 두려움을 달래줄 사람이 없다.
장군이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이 한가지뿐이다. 한없이 가볍고 구차한 변명은 사랑에 오명을 씌우는 것. 그리하여 장군이 감방에 가기전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마마의 방에 어른거리는 나뭇가지를 잘라 버리는 것. 오직 이것뿐이다. 그래서 장군은 대책 없이 경찰서를 뛰쳐나와 마마의 창문 앞에 서있는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자르는 것이다.
넷.
영화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이창독 감독. 그는 정말이지 지독한, 어찌 보면 냉혈한이라고 할 정도로 차겁다. 감정의 개입이나 사회에 대한 구호나 동정심의 이입 따위는 그의 안중에 없다. 장군이 마마와 동침을 하고 끌려간 경찰서에서조차 변명하지 않는다. 언어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고 과장된 몸짓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을 향해서 가르치려 하지 않고 관념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가지도 않는다. 철저한 리얼리스트이자 이미지스트다. 그는 다만 보여주기만 할 뿐 사람들에게 무엇을 던져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창독감독이 아무런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고 어떤 의미도 내포되어 있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이창동 감독은 외침의 허허로움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침은 외침에 포함된 단순한 의미 이상은 없다. 외치기에는 의미전달의 수가 너무 많다. 그 많은 의미를 다 외치다가는 영화는 아마도 외치다가 끝을 내고야 말 것이다. 외침과 외침의 내용과 외침의 수용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항변과 항의, 웅변과 변명, 눈물과 서러움. 이런 외침의 도구들이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대다수 영화의 외형적인 스타일이었다.
저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헐리웃의 영화를 보라. 계몽주의자들도 아니면서 계몽하려 들고 권선과 징악을 자기들 내키는 대로한다. 관객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흥분하고 울분을 토해야 하며 그 자리에서 싸구려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 오아시스를 보라. 외침도 없고 눈물도 없다. 관객은 스스로를 삭여야 한다. 스스로를 삭이면서 다시금 곱씹어야 한다.
다섯.
오아시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브레이킹 더 웨이브, 뽕네프의 연인들 같기도 하지만 그것들과 비교하기에는 함의하는 바가 좀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독립영화가 지향하는 작가주의 예술주의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독립영화에서 볼 수 없는 짜임새와 재미를 주고 있다. 그것은 감독이 소설가 출신이고 직접 각본을 쓴데서 연역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영화적 기법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영화라는 데서 감독의 노고의 일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들고찍기(hand held)에 의한 롱컷기법이라든지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해서 평하지 않고서도 이 영화는 그 스타일과 내용만으로도 별점 4개 이상은 주어도 무방하다고 할 것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려면 사막으로 가야 하겠지만 우리 사는 이곳 이 세대 사막 아닌 곳이 어디 있겠는가? 간간이 오아시스를 찾아 목을 축여주어야 사막에서나마 영혼을 물들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족 : '내가 만일'이란 노래는 필자의 노래방 목록 1호다.
'내가 만일'을 너무 자주 불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은 적어도 마마가 장군에게 불러줄 때에야 그 가사
가 진정한 빛을 발하리라
20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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