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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터키를 다녀와서
작성자  김형철 (28 기)(jeffkim13@hanmail.net)
작성 시간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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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형제의 나라를 다녀와서
 
   Turkey(터키)를 흔히들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데,  왜 터키는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국가라고 하는가?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자세하게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번 7박 9일 터키여행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2019년 7월 12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집 근처에서 출발한 공항버스는 2시간 걸려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청사에 도착하였다.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우선 가이드부터 만나서 계약서를 받고 에티하드 항공 체크인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2019년 7월 13일 새벽 1시 출발 에티하드항공 873편은 아부다비를 향해서 힘차게 날아올랐다.    모든 항공사는 홈그라운드를 찍고 날아가는 홈베이스 지향대로, 아부다비에 9시간 만에 도착하여 이스탄불 행 비행기로 갈아타고서 5시간을 더 비행하고 나서야,  드디어 동서양이 만나는 터키의 옛 수도인 이스탄불에 도착하였다.
    이스탄불은 유럽지역이 있고 아시아 지역이 있다고 하니, 여기야 말로 유럽과 아시아 문명이 충돌하는 최전선일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받은 제일 큰 문화적 충돌은 건물 곳곳에 걸려있는 터키 대형국기다.    우리나라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만 이곳은 매일 국기를 걸고 늘어뜨리고 있었다. 
     왜 터키사람들이 2002년 월드컵 3ㆍ4위전에서 붉은 악마들이 늘어뜨린 태극기와 똑같은 크기의 자기네 나라 국기를 보고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지 짐작되었다.        먼 이역만리 형제국가에서 펄럭이는 터키국기를 보면서 그들은 온몸으로 흥분하고 감동하였을 것이다.    터키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돌궐족들이 당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그들은 고구려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그 은공을 잊지 않고 1300년이 지났는데도, 자유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한 6ㆍ25 한국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형제나라를 위해서 제일 최전방에서 공산군과 싸웠고 제일 많이 전사하였다.    이것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터키와의 관계이다.       이스탄불 뿐만 아니라 터키 땅 곳곳에서, 관광지에서, 유적지에서, 힘차게 펄럭이고 있는 터키국기를 보면서 우리도 벤치마킹해야 한다.     개인주의 시대이지만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     저들처럼 매일 매일 국기를 걸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삼일절 현충일 제헌절 광복절 같은 국경일에는 태극기를 펄럭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며 국가의 존재이유다.    국가(정부)의 제일 큰 사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경일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휘날려야 할 태극기가 최근  광화문이나 덕수궁 근처에서 미국국기랑 일본국기랑 펄럭이며 정부 타도를 외치는 것은 과도하다.
    지금은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것 인지를 바라기보다는 각자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행동으로 보여 주여야 할 시기이다.    인솔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터키선수들 입장할 때 기립박수를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터키보다 미국선수들에게 더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어 적잖이 실망했었다고 한다.   터키가 알파벳순으로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 2002년 월드컵 터키 경기 때 한국 심판이 터키선수에게 퇴장카드를 보여주고 그 선수가 나간 뒤 터키가 패하였을 때 분노했다고 한다.    터키 현지 한국목사의 자택 유리창에 돌을 던져 창문을 깨뜨릴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기분이 상하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주일 후 3ㆍ4위전에서 대형 터키국기를 보았으니, 분노의 감정이 감격으로 바뀌고, 그 한국목사의 자택에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수많은 선물이 쌓였다고 하니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터키인들은 국가와 국기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을 정복한 오스만 투루크 대제국!    그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국기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첫날,  세계 최대시장인 그랜드 바쟈르에서 쇼핑하고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랜드마크인 성소피아성당을 관광하였다.   세계 문화유산 소피아성당은 이슬람의 대표적 성당이었다가 십자군이 점령했을 때는 기독교 교회였다가 다시 모스크였다가 이래저래 수난을 많이 당한 곳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어서 성당 전체를 다 볼 수는 없었지만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어떤 때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또 어떤 시기는 알라신을 섬기는 누구를 모시느냐에 따라서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세워진 소피아 성당은 또 다른 변모를 하고 있다.
     그 다음날 푸른 타일의 신비로운 블루모스크를 관광하고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거주하였던 돌마 바흐체 궁전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내부 모습은 더 화려하고 정결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촬영은 일체 금지라서 오로지 가이드의 해설만 듣고 눈으로만 이곳저곳을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나왔다.   술탄의 집무실, 공식 연회장,  외국사절 접견실과 대기실, 황제비의 침실과 황태자 도서실, 터키식 목욕탕까지 관광을 즐기며 눈으로만 보고 귀로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가슴으로는 느끼고 머리로는 오스만 대제국이 얼마나 대단한 제국이었는지, 왜 터키인들이 그들의 국기를 저토록 사랑하는지 감성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술탄의 톱카프 궁전으로 갔는데 여기는 내부시설보다는 외부 정원과 건축물이 멋진 곳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궁전내 이슬람 박물관안에 모세의 지팡이, 솔로몬의 칼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왔다는 게 아쉽고 가슴이 멍하다.    만약 자유여행이었더라면 관람하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것이 패키지 단체여행의 단점이다.   또한 여기에서 아내랑 이산가족이 될 뻔 했는데, 다행히 팀원들과 헤어졌을 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찾기 쉽다는 가이드의 규칙을 잘 이행하였기에 아내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사흘 째, 바다 같은 소금호수를 보고서, 지하교회가 있는 지하도시 데린구유 유적지로 향하였다.    이곳은 지하 8층 같은 높이로 밑으로 밑으로 들어가서 마치 지하도시를 형성한 곳이다.    기독교인들이 로마군의 박해를 피해서 지하에 주거지와 교회, 신학교, 세례 장소, 음식창고 등등을 만든 곳이다.    숨을 쉬기 위해서 지상까지 환기구 통을 만들어 공기가 들어오게 했으며, 로마군 침입에 대비하여 큰 맷돌을 돌려놓으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야말로 신앙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여기서도 패키지 여행인 관계로 지하교회까지 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꼭 들어가야지 하는 여운을 두고 왔다.    목표가 생긴 것 이다.   꼭 정통 성지순례여행을 하여 이스라엘, 그리스, 터키를  보고 말리라.   
 
     나흘 째 일정은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인 카파도키아로 이동하였다.   6시간의 긴 이동이었지만 카파도키아로 접어들면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오 주여!  이곳이 지구란 말입니까?  인간은 억만번 살아도 결코 만들 수 없는 지구 아닌 화성 같은 곳 ‘카파도키아’에서 기암괴석의 절경을 보았다.    산 구석구석에는 수도원을 만들어서 교회를 만들고 병원도 짓고 주거공간으로 사용하였다.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허브로 피부약을 만들어 그들을 치료해주고 복음도 전한 그런 곳이다.
   왜 엄청난 박해를 받을 때 신앙심이 깊어지고 넓어질까?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하나님보다 현실세계를 동경하게 될까?    필자도 소천하신 어머니께서 그토록 교회가는걸 죽기를 각오하고 말리셨을 때 오히려 신앙의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교회출석을 반대하셨는데  지금 딸에게 어머니가 했던 것 처럼 교회를 가라고 하고 딸은 안 간다고 하고 이게 업보인가보다.  
    카파도키아는 지역의 특성상 대형 열기구를 탈 수 있는 곳이었는데, 三代가 복을 받아야 경험해보는 열기구를 운 좋게도 탈 수 있었다.    일출광경을 열기구에서 보도록 한 옵션투어로, 새벽에 기상하여  들판으로 갔다.  바람 한 점 없는 좋은 날씨였기에 우리는 열기구에 탑승하고 드디어 하늘로 서서히 올라가고 필자도 ‘와’하는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이 곤란하며 사진촬영이나 동영상을 보는 것보다 직접 두 눈으로 주변 경관을 보아야 감동이 더 오래 갈 것 같다. 서서히 올라가는 열기구, 주변 광경으로는  이색 기암괴석, 계곡지대이며  얼마 후 태양이 떠오르며 주변 열기구들도 하나 씩 하나씩 100대가 계곡을 장악하고 날아가는 모습:  이 어찌 壯觀이 아닌가?     그러나 인간은 간사하다고 했던가?   일출을 보고서는 다시 내려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있지만 인생의 최고정상, 최고전성기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겸손해야 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 열기구가 아니라도 나머지 99대의 열기구와 보조를 맞추고 오르고 내려가고 할 때 최고의 장관을 연출하듯이, 나홀로 이루려고 하지 말고 남과 이웃과 더불어 오르고 내려갈 때 우리 인생은 더욱 퐁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날 파묵칼레 온천지역으로 관광을 하였는데, 고대 로마시대 유적지가 있는 세계문화유산 ‘히에라폴리스’이다.   마침 폭염을 식혀주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는게 힘들었지만 이 또한 신의 축복이 아닐런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시원하게 인생의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다.   저 멀리 원형경기장 옆 빌립보가 순교한 곳에는 빌립보교회가 세워져 있다.
  
    유럽사람들이 장기간 여름휴가를 온다고 하는 안탈리아에서 아침에 일어나 유람선을 타고 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과차를 마시며 안탈리아 암벽 해안가를 일주하며 여행의 피로를 풀고 있다.   언제 나타났는지 웬 사진사가 웨딩화보사진 같은 자세를 요구하며 우리부부를 찍고 있다.  10분 만에 액자를 완성하고서는 20유로에 사라고 한다.   디스카운트를 요구했는데  안 팔겠다며 가버리는 그를 설득하여, 구매했지만 돌아와 보니 불량품이다.  사진이 줄줄 흐른다.  액자사진은 불량이었지만 우리의 추억은 새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도 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부를실 때까지...
    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건축물들이 있는 에페소로 들어서니 황제를 신격화한 신전과 도서관, 원형경기장, 귀족들만을 위한 화장실, 공개아고라(장터) 심지어 유곽까지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곳 원형경기장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가 맞아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음란과 타락의 도시 에베소!   그곳에서 마치 바울을 만난 듯 하다.  오늘도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  “주께로 돌아가소”
 
    터키 일주 여행은 막바지로 가고 있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로 향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던가?  옛 성벽과 아고라를 보고 30분 만에 관광을 마무리하였다.  더 이상 볼게 없다.   “ 눈으로 보지 마시고 가슴으로 느끼시라” 는 가이드의 설명대로 가슴의 울림을 타고 머리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 옛날이여’
 
    필자는 크리스챤 이기에  세상과 친해지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이제 여행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대형 선박에 관광버스와 몸을 싣고 다시 유럽지역으로 가고 있다.   배안에서 아내는 샤넬향수를 10유로에 샀다.   웬 선상판매원(불법)이 아내의 관심을 눈치코치로 읽으며 끈질기게 집요하게 향수사기를 요구하고 있다.  필자가 단호하게 노우댕큐라고 엄포를 놓았는데도 자리를 이동하면 따라다니며 팔아달란다.  샤넬이란다.  마음 좋은 아내는 산다.  그래 잘했구먼  명품 샤넬이쟎아 ?   마지막 밤은 세계적인 체인 호텔인 힐튼에 여장을 풀고 객실에서 아내랑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정리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보스포브스 해협을 횡단하는 전용 유람선에서 터키 이스탄불의 해안 정경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갈매기들이 끼욱 끼욱 날아가고 있다.  부산 갈매기인가? 몸은 터키지만 이제 마음은 고향으로 가고 있다.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에티하드 항공을,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부다비에서 환승, 다시 9시간 만에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터키의 영웅이자 진정한 국부 케말파샤!   원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파샤 아타트루크(투르크의 아버지)   그를 빼고 마무리 할 수 없겠다.   나라마다 현대사 국부라고 하는 위인이 있다.   미국의 조지워싱턴,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싱카폴의 리콴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대만의 쟝제스, 베트남의 호치민,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영국의 윈스턴 처칠, 중국의 마오쩌뚱 등등 (우리나라는?)
    수 많은 국가의 영웅이나 국부가 있지만 터키, 오스만 투르크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세워 중세국가에서 현대국가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방향을 튼 무스타파 아타투르크-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터키도 없다.  그만큼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치인을 우리는 언제쯤이면 볼 수 있을 까?  케말파샤시대의 터키공화국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가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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