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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만을 다녀와서
작성자  김형철 (28 기)(jeffkim13@hanmail.net)
작성 시간 201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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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다녀와서

  가까이 있는 나라는 거의 다 다녀왔지만 대만은 첫 방문이었다.  대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는 단어는 ‘자유중국’이다.  필자의 학창시절  중국은 중공이었고 자유중국은 지금의 대만이었다.  자유중국의 독재자인 쟝제스는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바탕으로 중국대륙을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우쩌뚱에게 광활한 대륙을 내주고 문화재만 싹쓸이하여 대만으로 들어가 본토수복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중앙집권적 독재국가를 만들어 강력한 권력과 신속한 국가주도 관치경제로 아시아의 4마리 용이 되었던 나라 그 대만을 보러 필자는 타이완으로 날아갔다.
    
    이번 여행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패키지 여행이었다.   2월 22일 금요일 아시아나 항공 711편은 타이베이 도원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장으로 빠져 나오는데 공항직원이 플라스틱 카드를 나눠주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체 많은 관광객들이 그 카드를 들고 나가는데 필자는 그 카드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가다가 낭패를 당하였다.  현재 대만에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큰 곤욕을 치루고 있으며 육류가공품은 일체 반입을 불허하고 있다. 심지어 컵라면도 안 되는 것이다.  결국 그 카드는 그러한 농축산품이 없다는 표시였고 필자는 그 카드가 없음으로 가방검사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프리패스하고 있는데 필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가방 엑스레이 검사를 받았고 필자의 가방 안에 있던 파리바게트 빵은 압수당하였다. 어떤 물건이든 강제로 빼앗기는 것은 불쾌하다.  그렇게 대만에서의 첫 감정은 분노로 시작되었지만 입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의 유머로 희석되었다. 
   “  선생님 !  대만은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니 시계를 맞추어 주세요.  1시간 젊어지셨습니다” 어느 누구인들 어려졌다는데 기분 나쁠사람은 없다.
   우리 가족 8명을 포함하여 패키지 여행 16명이 다 모여서 현지 관광버스로 이동하였다.  16명인데도 35명이 탈 수 있는 2층버스 같은 대형버스가 나오니 또한 기분이 업되었다.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36년간 식민지배를 받았는데 대만은 일본에게 50년 식민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과히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우호적이다. 일본이 지배하면서 철도도 놓아주고 학교도 세워주고 병원도 건립해주어 대만근대화를 이루게 해주었으니 고맙다는 것일까? 아니면 워낙 많은 세월을 식민지배를 받았는데  그 나라들 가운데 그래도 일본이 가장 낫다는 것일까?  아무튼 가이드의 설명도 대만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이한건 4일 동안  관찰했는데 대만인들의 자동차는 거의 대부분 일본제품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산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2층버스 같은 Coach 도  일본스타일이다. 셋째날 식사를 했던 샤브샤브 식당도 일본스타일이었다. 우리는 샤부샤부를 몇 명이 하나의 냄비를 끓여서 육수, 고기, 야채를 끓여 먹는데 대만인들은 8명이면 8개 각자의 냄비에서 끓여먹는 것이다.  일본의 세븐일레븐 편의점은 대만 곳곳에 널려있다.  가히 세계 제일의 편의점 대국이다.  반백년 지배를 한 나라를 좋게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을 좋게 보며 배울게 많은 나라라는 것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일본사람들은 친절하고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며 깔끔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며 배려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일본을 많이 방문했지만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다. 일본인들도 친절하다.  가다가 옷깃을 살짝 스쳐도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정답은 간단하다.  정치지도자들이 문제다.  일본의 우익보수정치꾼들!  
    그들이 문제의 핵심이다.  일본백성들은 괜찮은데 그들을 끌어가고 있는 지도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고 그런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그 나라의 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베트남의 호치민, 싱카포르의 리콴유 , 영국의 윈스턴 처칠, 프랑스의 샤를드골 등등
    행운이 따라야 하지만 정치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자질없는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첫날 대만이 자랑하는 세계 4대박물관인 국립고궁박물관을 방문하여 지하 1층에 있는 중국의 국부 쑨원 동상을 보면서 투어를 시작하였다.  마오쩌뚱에게 패퇴당하여 중국 대륙을 내준 쟝제스는 4회에 걸쳐서 치밀한 준비와 계획을 가지고 자금성 유물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국보급 문화재와 유물을 대만으로 가져왔고 그것들을 지금의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자금성에서는 껍데기만 보고 내용을 볼려면 대만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고궁박물관 유물을 전부 보려면 며칠이 걸리지만 중요 유물만 보고서 박물관을 나서야 했다.  패키지 투어의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마음이 꽂히면 오래 있을 수 있는게 자유여행이라면 엑기스만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만 하는게 패키지다.   쟝제스 기념관인 국립 중점기념당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였지만 오늘날 대만경제의 틀을 잡은 쟝제스의 기념관을 여유있게 싶었지만, 패키지인 관계로 쟝제스 대형동상과 근위병 교대식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물론 두 유형은 장단점이 있다. 패지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자유여행인 FIT만 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서로 좋다고만 하지 말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다양성이다.

    둘째 날은  송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태로각 협곡을 보러 화렌역으로 향하였다.  오랜만에 외국에서 타는 기차는 무척 정답고 낭만적이다.  우리나라처럼 기차여행을 하는 도중 객실과 객실사이를 오고가는 식음료를 파는 이동카트도 있으며 우리와 다르게 쓰레기를 치워주는 청소원도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족은 열차의자를 돌려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며 사진도 찍고 하는 사이에 금방인 것처럼 화렌역에 도착하였다.  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태로각 협곡이 있는 태로각 국가공원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칠성담 해변공원에서 태평양바다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태로각 협곡을 갔다.  여기는 마치 장가계나 그랜드캐넌을 보는 것과 같은 엄청난 스케일의 협곡이 길게 뻗어 있었다.  쟝제스가 군인들을 동원하여 동서 190km를 수작업으로 4년동안 뚫어 굽이굽이 길을 만들었으며 버스 2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아슬아슬한 길이었고 펜스밖은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는 무릉도원이다.  이 공사로 22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절을 지었으니 장춘사이다.  쟝제스는 이 태로각 국가공원 도로공사를 전투라고 생각했으며 동서로 길을 낸것처럼 중국본토를 수복하자고 외쳤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시대에는 독재자의 광기어린 대 공사였지만 그것으로 인해 후손들은 관광자원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만리장성, 진시황의 병마용, 진시황릉, 앙코르와트, 페트라, 자금성 등등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런가?

    셋째날은 일본의 에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배경이었던 지우펀 옛거리를 보고 용산사와 중정기념당을 관광하고 스린야시장과 우리나라 명동같은 서문정 거리를 보았다. 대만인들의 80프로가 믿고 있는 도교의 중심사원인 ‘용산사’  태평양전쟁 중 일본전투기 폭격으로 많은 타이베이 시민들이 용산사로 숨었는데 그 사찰로 떨어지는 폭탄을 마우신이 나타나서 바다로 던져버렸다고 하며 수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목격했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일수도 있지만 그 마우신을 대만인들은 철썩같이 믿고 있으며 사업번성과 자식교육, 가정평안과 건강을 빌고 있었다.  우리팀이 방문한 날은 억수같은 비에도 아랑곳 않고서 수많은 신자들이 위와 같은 내용들을 빌고 있었다.  필자는 크리스챤이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듯이 어느 종교든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며 이 험한 세상의 길잡이이다.
  스린야시장에서 과일을 사고 저녁식사후 서문정거리로 갔다.  서울의 명동, 부산의 서면 같은 번화가에서 스토리텔링으로 매스컴을 탄 ‘눈물의 꽃’ 빙수를 먹으며 가족들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순간을 잡고 싶다는 마음과 부모님과 같이 여행 왔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오버랩되며 가장 감동적인 여행은 가족여행이 아닌가 한다.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 외동딸은 어학연수가서 친해졌던 대만친구를 서문정에서 기다렸는데 그 친구가 와서 커피숍에서 회포를 풀었는데 40분의 짧은 시간이 너무 아쉽다고 하며 자유여행이었다면 좀더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푸념한다.  아빠로서 패키지여행이라 단체일정에 맞추어야 한다며 1964년 일본 토오쿄오 올림픽의 신금단 선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십년 헤어져있다가 올림픽선수로 참가한 북한 신금단을 남한의 아버지가 만났는데 그 시간이 5분이었다. 부녀지간에 얼마나 그리웠으며 보고 싶었는데도 만나자마자 곧 헤어졌으니 40분은 괜찮은 시간이 아니냐고 했더니 수그러들었다.  어찌 친구만남을 부녀지간 상봉과 비길 수 있으랴마는 평소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우리 부녀가 이런 가족여행을 통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도울 수 있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않은가?  이래저래 가족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날 호텔조식을 먹고 대만이 자랑하는 야류지질공원을 관람하였다.  오랜 시간 바람과 파도에 깍여 각양각색의 모양을 뽐내고 있는 이 공원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가장 인기있는 ‘여왕의 왕관’은 20분간 줄을 서서 기다려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1구역에는 어부의 동상이 있는데 파도에 떠밀려 내려가는 대학생 3명을 구하고 자신은 나머지 1명을 구하려다 파도에 말려 목숨을 잃은 어부의 살신성인을 기려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어느 시대든 어느 지역이던 義人은 존재한다.  명복을 빌어본다. 

    3박 4일의 가족여행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다음에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대만에 와서 자유여행을 즐기자고 하는 딸을 바라보며 흐뭇하다.  우리 딸은 호주, 태국, 베트남, 홍콩, 마카오를 혼자서 자유롭게 여행하였다.  그렇지만 아빠는 패키지를 할련다.  여행사도 먹고 살아야지  모두가 자유여행만 한다면 여행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아빠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전공이기 때문에 여행사경영론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여행사 패키지상품을 사서 직접 경험하는거라고 ....

    이렇게 필자의 27번째 국외여행은 마무리되고 있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를 갈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그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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