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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요르단을 다녀와서
작성자  김형철 (28 기)(jeffkim13@hanmail.net)
작성 시간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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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요르단)을 다녀와서

     주거주지를 떠나서 1년 이내에 다시 돌아올 예정으로 다른 지역이나 타국의 문화와 살아가는 모습을 경험하는 총체적인 활동을 관광이라고 한다.  그러나 관광이라는 말보다는 보편적으로 여행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관광과 여행의 특수한 형태를 특수 관광 또는 Special Tour 라고 한다.   여기에는 의료관광, 박물관투어, 카지노 여행, 식도락관광, 오지탐험 등등이 있다.   여기에 덧붙이면 성지순례여행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이번에 필자가 한 여행은 예수제자훈련학교를 수료하고 강의시간에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현장실습선교 여행이었다.  요르단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독교역사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요르단은 요르단강(요단강)·암몬·모압 등 구약 및 신약성서에 나오는 장소가 많아 고대부터 역사에 등장하지만 주변국의 침입이 잦아 제국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BC 600~AD 100년에 걸쳐 셈계(系)의 나바테아인(人)이 왕국을 세우고 페트라를 수도로 정하여 번영하였으나, 일시적이었으며 그 뒤에는 로마제국(帝國)과 비잔틴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으며, 6세기 이후 아랍인에게 정복되어 이슬람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6세기 이후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속령(屬領) 시리아의 일부가 되었고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으로 세계사에 크게 등장하였다.  필자는 크리스챤으로서 하나님 나라 확장과 하나님 나라 백성 위로가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여행을 가면 필수적으로 하게 되는 쇼핑도 전혀 하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과 한식당에 찾아가는 투어도 아니었으며 여행사 패키지도 아니며 그렇다고 자유여행(FIT)도 아니었다.   패키지로 가게 되면 국외여행인솔자의 인솔을 받으며 현지에서는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을 듣는데,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으며 예수제자훈련학교 간사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현지에서는 선교사님이 나오셔서 가이드를 하였다.    필자는 지금까지 26개 나라의 여행경험이 있지만 이번여행은 패키지투어도 아니고 자유여행도 아닌 특별한 형태의 현장실습 선교여행이었다.
  
   

 

     2018년 12월 24일 새벽 출발 카타르항공 여객기를 타고서 카타르 수도 도하로 들어갔다.  도하공항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중동지역의 허브공항답게 수많은 항공사들이 비행기를 띄우고 있는 공항이다.  카타르 항공은 세계최고의 항공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조금 괜찮은 항공사였다.     10시간 이상 장거리를 가게 되면 승무원들도 교대로 벙커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기도 잠을 자기도 한다.    필자는 맨 오른쪽 창가좌석을 배정받았는데 화장실가기도 불편하고 너무 좁고 갑갑해서 힘이 들었다.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자는 시간이 되자 승무원이 보이지 않아서 불편하였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갤리에 있는 스튜어디스에게 물 한잔을 요구하였더니,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진작에  기내를 순찰 해야지 되뇌이며 여기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서비스는 서비스제공자의 편의가 아니라 고객관점에서 생각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도하공항에서 다시 Transit 하여 2시간쯤 지나 요르단 수도 암만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엄청난 양의 위탁수하물을 찾고서 공항출구를 빠져 나오니 선교사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선교사 숙소로 가서 짐을 전부 풀고서 가지고 온 바이올린, 노트북, 의류, 학용품, 인형, 장난감 등등을 헌물하였다.   13명이 모두 1인당 30kg의 위탁수하물을 들고 왔는데 모조리 현지 교회와 한인교회, 시리아난민학교에 주고 나니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받는 것 보다, 선물을 줄 때 7배의 엔돌핀이 나온다고 하니 많이 주고 볼 일이다.    요르단 올 때는 엄청난 짐이었는데 귀국할 때는 개인캐리어 밖에 없어서 훨씬 수월하였다.   맨 몸으로 태어나서 하나님 나라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데 물질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욕심이다.    남보다 더 가지고 더 소유할려는 욕심이 우리 인생을 황폐하고 허무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들: 집, 자동차, 화폐, 노트북 , 별장 등등 -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잠깐 빌렸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인생은 여행이라고 하는데,   여행가서 호텔에 투숙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모든 인테리어들이 본질이 아니다.    그 안에 있는 침대, 화장실, 커텐, 컴퓨터 등등 모든 것들이 내것이 아닌 잠깐 빌려 쓰고 있는데,  호텔객실에 있는 침대를 바꿀려고 하고 커텐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빨간색으로 교체하고 화장실에 비데가 없어서 새로 비데를 설치하고 그렇게 인생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성이 있다.
   만약 그렇게 산다면 인생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추종하는 것이다.

   요르단에서 현지인교회와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피부색과 국적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너나없이 형제자매였다.  아랍어를 쓰는 마르질하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하고 황홀하였다.  시리아난민 5개 가정을 방문하여 기도하고 위문품, 선물을 전달하면서 찬송가를 불렀는데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해 가슴이 아련하였다.   그들은 무슬림에서 크리스챤으로 개종하면 목숨의 위협까지도 받을 수 있으므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관계맺기부터 해야 하는 이유다.  마치 우리나라 60년대 달동네 판자촌을 떠오르게 하는 곳으로 물질적으로 빈곤한 곳이지만 5남매, 6남매, 7남매 오순도순 가족들끼리 단합하며 현재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알지 없지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아랍문화는 손님이 오면 뭐든지 음료를 대접하는 풍습이 있어서  연달아 커피를 음료를 마실 수 밖 에 없었다.    그들은 K리그를 보지 않는 영국 프리미어 축구를 보는, 몸은 서양인이고 정신은 동양인인 中洋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시리아 난민학교를 방문하여 70여명의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과 게임도 하고 공연도 보여주며 위문품과 학용품을 전달하는데 고마워하는 어린이들의 선한 눈동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쟁발발과 내전으로 인하여 이웃나라 요르단으로 피난을 나와서 언제 돌아갈지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리아인들이었다.    이렇게 관계맺기를 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이고 열매는 하나님이 거둘 것이다.
 
    와디럼이라는 광야와 사막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텐트호텔에서 1박 하였는데 가도 가도 끝없는 광야를 지프차로 이동하면서, 여기는 그야말로 잠깐 길을 잃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고립된 곳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예수님이 왜 선한 목자인지 체험 할 수 있었다. 가도 가도 풀 한포기, 물 한모금 찾을 수 없는 사막이자 광야에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주님만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 인생이 여유로와 질 수 있다.     어쩌면 저 광야가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잘 나가다가도 한방에 고꾸라지는, 아무리 찾아도 아군은 없고 적들만 우글 우글대는 정글 같은 인생이  아닌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

   마지막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한 느보산 성지순례를 하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멀리 사해가 보이고 이스라엘 땅도 보인다.   여리고가 바로 코앞 같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야에서 젓과 꿀이 흐르는 여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던 모세였지만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에 절대 순종하였던 모세, 그의 꿈은 여호수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0년 만에 자기 땅을 찾았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도 건설하였다.

     요르단 호텔에 숙박하며 자고 있는데 새벽녘쯤 근처 이슬람사원인 모스크에서 요란하면서도 은근한 종소리가 났다.  빨리 기도하러 오라는 것이다.  무슬림은 하루에 5번 성지를 향해 기도의식을 드린다.   그것 때문에 단잠에서 깨어났지만 대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였다.    요르단이 자랑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이며 세계유산인 페트라를 관광하였다.  페트라(Petra)는 나바테아인(Nabataean)이 건설한 사막에 있는 고대 대상(隊商) 도시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홍해와 흑해 사이에 있다. 이곳은 이집트와 아라비아, 시리아-페니키아 사이의 중요한 교차점이어서 번영을 누렸다.   페트라의 건물들은 바위산을 반쯤 깎아서 만들었고, 좁은 통로와 수많은 협곡이 있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대 동방의 전통과 헬레니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이다.    자연과 인간의 완벽한 조화를 보았다.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다.  
   

      암만 시내를 지나며 아직 완공되지 않은 60층짜리 빌딩이 있어서  왜 저렇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처음부터 60층에 맞는 배수관시공을 해야 하는데 건설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말도 되지 않는 배수관 인가를 냈는데 그게 말썽이 되어 공무원은 뇌물수수죄로 구속되고 다시 배수관을 만들려고 하니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어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후진국의 전형적인 건설비리다.    또한 외국인을 봉으로 보는 문화가 있어서 지폐를 받고서 거스름돈을 엉터리로 준다고 하며 지폐를 건네면  큰돈부터 거슬러 주는게 아니라  작은 단위부터 돌려줘 바가지를 당할 수 있었다.   인내를 가지고 돌려달라고 하지 않으면 속을 수 있다.    햄버거를 15개 주문하였는데  그 중 1개는 햄버거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없었다.   그냥 속을 수 있는 것이다.   왜 없냐고 항의를 하니 그때야 실수했다고 패티를 넣어줬지만 필자가 보기에 실수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다.    모르고 넘어갔으면 당하는 것이다. 
   

 

       요르단은 중동국가 중 유일하게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라, 관광산업에 많이 의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식의 서비스시스템이라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페트라에 입장할 수 있으면서 요르단비자로도 쓸 수 있는 요르단 패스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환불해주지 않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이런 실패사례들이 요르단의 이미지를 깍아내려  관광객이 외면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페트라에서 문화유적지 탐방을 하는 가운데 3분 간격으로 마차가 요란하게 지나가서 관광을 방해하고 있었다.   페트라 무덤 유적지 동굴에서는 세계유산임에도 그 안에서 담배 등 장사꾼들이 상거래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시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가야 한다.
    

     아쉽게도 사해를 보지 못하고 왔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  여기에도 하나님 백성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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